DC 유니버스에서 ‘고담(Gotham)’은 단순한 도시 그 이상입니다. 범죄와 부패가 일상인 이 도시는 정의와 악, 권력과 혼돈이 끊임없이 충돌하는 상징적인 공간으로, 배트맨 시리즈의 거의 모든 이야기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늘 변화하는 권력 구조가 존재했죠. 2024년 HBO 드라마 ‘더 펭귄(The Penguin)’은 기존의 히어로 중심 서사에서 벗어나, 고담의 ‘권력의 흐름’과 ‘도시의 질서’가 어떻게 유지되고 무너지는지를 범죄 드라마 시선으로 탐구합니다. 본 글에서는 드라마 ‘더 펭귄’을 통해 고담의 권력 구조를 입체적으로 분석해보겠습니다.
고담을 움직이는 진짜 권력은 누구인가
‘고담’이라는 도시는 겉으로는 시장과 경찰청장이 이끄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진짜 권력은 지하 범죄조직, 부패한 정치인, 기업의 로비스트들이 쥐고 있으며, 시민들은 그 틈바구니에서 불안정한 일상을 살아갑니다. 드라마 ‘더 펭귄’은 이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고담이 어떻게 ‘불신과 폭력의 도시’가 되었는지를 파헤칩니다. 드라마는 ‘더 배트맨’ 영화의 직후부터 시작되며, 갱스터 대부 카르민 팔코네(Carmine Falcone)의 사망으로 권력 공백이 생기면서 새로운 세력이 고담의 지하 세계를 장악하려는 모습을 중심으로 그려집니다. 팔코네는 수십 년간 경찰과 정치인을 매수하고, 법 위에 군림했던 인물로, 그의 몰락은 고담 권력 지형을 근본부터 흔들죠.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수많은 세력들이 움직입니다. 마피아, 갱단, 부패한 경찰 간부들, 그리고 정치적 야망을 가진 인물들까지, 저마다의 이해관계를 품고 고담의 지배권을 차지하려 듭니다. 드라마는 이 각축전을 정치 드라마처럼 섬세하게 묘사하며, 고담이라는 도시가 ‘힘’을 통해만 유지된다는 냉혹한 진실을 보여줍니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이 과정에서 법은 무기력하고, 도덕은 사치에 불과하다는 현실이 반복해서 드러난다는 점입니다. 시민의 안녕이나 정의 실현은 오직 명분일 뿐, 실제 고담을 지배하는 것은 폭력과 거래, 협박과 배신입니다. ‘더 펭귄’은 이를 생생하게 드러내며, 팬들에게 고담이라는 세계의 실체를 다시 바라보게 만듭니다.
펭귄의 부상, 권력의 속성을 보여주다
드라마 ‘더 펭귄’의 핵심은 주인공인 오스왈드 코블팟(펭귄)이 어떻게 고담의 지하 세계에서 하나의 ‘권력’으로 부상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는 거대한 조직의 수장이 아닌, 권력의 공백 속에서 기회를 포착해 스스로를 ‘왕’으로 만들어가는 인물입니다.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그의 선택과 전략은, 권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펭귄은 무력보다는 정보력, 충성 관리, 거래 능력 등 현실 정치에 가까운 방식으로 권력을 구축합니다. 단순히 폭력으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약점을 잡아 협박하고, 반대 세력과 임시 동맹을 맺고, 자신의 명분을 구축해 지지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행동하죠. 이는 실제 정치인이나 권력자들이 사용하는 전략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합니다. 그의 성공은 ‘정의롭기 때문’이 아니라, ‘유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고담의 권력 구조에서 가장 중요한 진실이기도 합니다. 이 도시는 옳고 그름보다 통제와 실행력, 그리고 사람을 얼마나 잘 다루는가가 권력의 기준이 되는 사회입니다. 펭귄은 드라마 속에서 상승하는 권력의 전형적인 단계를 보여줍니다. 1. 하급 조직원에서 시작 2. 혼란 속에서 기회 포착 3. 무력과 정보력으로 영향력 확보 4. 경쟁자 제거 5. 체계적 조직 구축 및 합법적 외피 마련 이러한 과정은 배트맨 시리즈에서는 종종 생략되거나 간략히 처리되던 내용이지만, 드라마 ‘더 펭귄’은 그것을 정치 드라마처럼 꼼꼼하게 그려냅니다. 따라서 단순한 범죄물이 아니라, 권력이 어떻게 생성되고 작동하는지를 분석하는 콘텐츠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
고담이라는 도시 자체가 하나의 권력 시스템
‘더 펭귄’을 통해 우리가 다시 보게 되는 것은, 고담이라는 도시 그 자체가 일종의 ‘권력 시스템’이라는 점입니다. 이곳에서는 특정 인물 하나가 영웅이 되거나 악당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도시 구조 자체가 권력을 순환시키고 배출하는 장치처럼 기능합니다. 예를 들어, 팔코네가 몰락하면 누군가 그 자리를 대체할 수밖에 없습니다. 권력의 공백은 곧 ‘불안정’을 의미하며, 이는 범죄율과 사회 불안으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이 도시는 늘 권력자를 필요로 하고, 때로는 그 권력자가 악인이어도 허용합니다. 왜냐하면 ‘악의 질서’라도 없는 것보단 낫기 때문입니다. 이 시스템 안에서는 경찰도, 정치인도, 언론도 ‘진실’보다는 안정과 생존을 우선시합니다. 드라마 속 기자들은 진실을 말하기보다 거래를 선택하고, 경찰은 범인을 잡기보다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범죄자와 손을 잡습니다. 시민들 역시 반항하기보다, 조용히 살아남기 위해 ‘지배자’를 받아들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은 현실 사회의 권력 구조와도 연결됩니다. 고담은 가상의 도시지만, 현실 세계의 도시들과 닮아 있습니다. 권력의 속성, 공공기관의 타락, 언론의 침묵, 기업의 영향력 등은 고담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에도 존재하죠. ‘더 펭귄’은 그 구조를 고스란히 반영하며, 고담을 통해 현실 세계의 권력 구조를 은유합니다. 결국, 고담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하나의 권력 메커니즘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모든 인물의 선택은, 인간 사회에서 권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며, 또 파괴되는지를 보여주는 복합적인 이야기로 읽힐 수 있습니다.
HBO 드라마 ‘더 펭귄’은 단순한 범죄물이 아닙니다. 이 작품은 ‘고담’이라는 도시를 통해 권력의 본질을 파헤치고, 악당의 부상을 통해 권력의 작동 방식을 보여주는 사회 정치적 드라마입니다. 카르민 팔코네의 몰락, 펭귄의 부상, 그리고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세력들의 충돌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현실 세계의 권력에 대한 은유로 읽힐 수 있습니다. 배트맨 시리즈의 오랜 팬은 물론, 정치 드라마나 사회 비판 콘텐츠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도 ‘더 펭귄’은 반드시 시청해야 할 작품입니다. 고담의 어둠은 곧 우리 사회의 그림자일지도 모릅니다. 그 속 권력의 정체를, 지금 함께 파헤쳐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