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NBC에서 시작된 드라마 ‘히어로즈(Heroes)’는 미국 드라마 중에서도 독보적인 세계관을 구축한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초능력을 가지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전 세계 도시를 무대로 풀어내며, 지역별 특성과 문화적 배경을 드라마 내적으로 흥미롭게 녹여낸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 글에서는 히어로즈 세계관의 지리적 구성, 뉴욕과 도쿄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의 상징성, 그리고 등장 초능력자들이 이 세계관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심층적으로 분석합니다.
미드 속 다중 로케이션 구조의 힘
히어로즈는 미국 드라마에서 흔치 않게 다양한 국제 도시를 무대로 삼은 작품입니다. 대부분의 미국 드라마가 뉴욕이나 LA처럼 특정 도시에 집중되는 것과 달리, 히어로즈는 시즌 1부터 여러 도시에서 시작되는 캐릭터들의 독립된 스토리라인을 교차시키며 방대한 세계관을 구성했습니다. 가장 중심이 되는 도시는 뉴욕입니다. 피터 페트렐리(Peter Petrelli), 아이작 멘데즈(Isaac Mendez), 모힌더 수레시(Mohinder Suresh) 등 주요 인물들이 이곳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야기의 중요한 갈등 지점과 사건이 뉴욕에서 일어납니다. 뉴욕은 현실에서도 다양성과 다문화적 배경을 갖춘 도시로, 히어로즈에서도 다양한 인종과 배경을 가진 초능력자들이 이 도시에 모이게 되는 설정이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한편, 히로 나카무라(Hiro Nakamura)의 이야기는 일본 도쿄에서 시작됩니다. 히로는 평범한 회사원이지만, 시간과 공간을 이동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면서 세계를 누비게 됩니다. 도쿄는 기술과 전통이 공존하는 도시로서, 히로의 캐릭터성과 잘 어울리는 배경입니다. 그의 시간여행 스토리는 단순한 ‘이동’ 그 이상으로, 과거와 미래, 동양과 서양의 철학이 교차하는 서사 구조로 확장됩니다.
로케이션별 상징성과 캐릭터 서사의 연결
히어로즈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각 도시와 그 속의 인물들이 단순한 배경-주인공 구조를 넘어, 로케이션 자체가 서사의 한 축으로 기능한다는 점입니다. 즉, ‘공간’이 단지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가 아니라 캐릭터의 성향과 서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로 등장합니다. 뉴욕은 서사의 중심지로, 대부분의 메인 사건이 이곳에서 벌어집니다. 아이작은 이곳에서 미래를 그리는 능력을 활용해 파국을 막으려 하고, 피터는 초능력자들 사이의 연결 고리로서 점점 성장해 갑니다. 뉴욕은 종말과 재탄생의 도시로 설정되며, 시즌 1에서는 도시 전체가 폭발 위기에 처한 미래가 등장하고, 이를 막기 위한 캐릭터들의 여정이 중심 플롯이 됩니다. 도쿄는 히로의 성장과 정신적 여정을 상징하는 도시입니다. 히로는 처음에는 단순한 회사원으로 현실 도피형 성격을 보이지만, 도쿄를 떠나 시간여행을 시작하면서 영웅으로 거듭납니다. 그의 친구 안도(Ando Masahashi) 역시 도쿄 출신으로, 현실주의적인 시각을 통해 히로의 여정에 끊임없이 균형을 부여합니다. 도쿄는 ‘전통과 미래’, ‘개인과 사명’이라는 테마가 공존하는 상징적 공간입니다. 텍사스는 클레어 베넷(Claire Bennet)의 주요 배경으로 등장합니다. 클레어는 치유 능력을 가진 고등학생으로, 미국 중부의 보수적인 지역 사회에서 성장합니다. 텍사스는 그 자체로 ‘일상성 속의 비일상’을 상징하며, 능력을 숨기며 살아가는 클레어의 불안과 고립감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인도는 모힌더의 스토리라인의 시작점으로, 유전학과 초능력의 과학적 접근이 시도되는 장소입니다. 그의 아버지 수레시는 초능력의 유전적 기원을 추적하다 사망했고, 모힌더는 인도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며 아버지의 연구를 이어가게 됩니다. 인도는 초능력에 대한 '이성과 신앙'의 경계 지점으로 표현되며, 모힌더의 내적 갈등을 드러냅니다.
초능력자의 분포와 세계관의 확장성
히어로즈는 처음부터 “초능력자들은 전 세계에 존재한다”는 설정을 갖고 출발합니다. 즉, 초능력은 특정 국가, 인종, 문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 진화의 일부’로 제시됩니다. 이러한 설정은 드라마가 다양한 배경을 통해 다양한 능력자들을 등장시키는 논리적 근거가 됩니다. 시즌이 진행될수록 초능력자들의 능력은 점점 복잡해지고, 그 분포도 세계 곳곳으로 퍼져나갑니다. 이는 곧 히어로즈 세계관의 확장성으로 이어지며, 마블의 ‘엑스맨’이나 ‘어벤져스’와는 또 다른 결의 글로벌 히어로물을 형성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슬란드 출신의 능력자 엘르(Elle)는 전자기 능력을 지닌 인물로, 미국 중심에서 벗어난 강력한 캐릭터로 주목받습니다. 멕시코 출신의 능력자들도 등장하며, 시즌 3에서는 아예 초능력자 수용소나 비밀 조직이 세계 각국에 퍼져 있다는 설정까지 더해집니다. 이러한 구조는 시즌이 거듭될수록 히어로즈가 하나의 ‘우주관’으로 확장될 가능성을 제시했으며, 이후 제작된 외전 시리즈 '히어로즈 리본(Heroes Reborn)'에서도 이 방향성이 이어집니다. 초능력자들의 능력도 단순한 공격형 능력에 그치지 않고, 기억 조작, 공간 이동, 감정 조절, 과거 회귀 등 심리적·철학적 요소가 가미된 능력들이 다수 등장합니다. 이로 인해 캐릭터들 간의 갈등도 단순한 힘의 대결이 아닌, 신념과 도덕의 충돌로 표현되어 깊은 서사를 만들어 냅니다. 결과적으로 히어로즈는 초능력자 개개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국적 세계관을 유기적으로 엮어낸 드문 작품이며, 지금 다시 봐도 완성도 높은 구조를 자랑합니다.
히어로즈는 단순한 ‘초능력’ 드라마가 아닙니다. 다양한 국가, 문화, 배경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글로벌한 서사 구조를 만들어냈고, 각 도시와 공간이 단순한 배경이 아닌 서사의 일부로 기능함으로써 깊이 있는 세계관을 완성했습니다. 미국 드라마로는 드물게 국제적 감각을 적극 반영한 이 작품은 현재도 재조명받고 있으며, 리메이크나 확장 시리즈가 제작될 경우 새로운 시청자들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인 콘텐츠가 될 것입니다. 히어로즈의 세계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