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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가 말하는 기술 윤리

by seokdoma 님의 블로그 2025. 4. 16.

영국 드라마 ‘블랙 미러’는 근미래 기술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 작품입니다. 단순한 SF를 넘어 기술이 만들어낼 윤리적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며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죠. 이 글에서는 블랙 미러 속 에피소드를 통해 기술 윤리가 어떤 방식으로 제기되고 있는지를 분석해보겠습니다.

블랙미러 포스터

감시 사회: ‘Entire History of You’의 경고

시즌 1의 마지막 에피소드 ‘Entire History of You(당신의 모든 역사)’는 인간의 기억을 디지털로 저장하고 언제든 재생할 수 있는 기술이 실현된 세계를 그립니다. 이 기술은 사람들의 모든 행동, 말, 시선까지 기록해 언제든 재생하거나 공유할 수 있게 합니다. 겉보기엔 매우 편리하고, 일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지만, 드라마는 이 기술이 개인 간 신뢰를 무너뜨리고, 사생활을 침해하며, 심지어 인간 관계를 파괴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아내의 과거를 추궁하기 위해 기억 영상을 반복 재생하다가 결국 자신의 정신이 붕괴되고 결혼도 파탄나게 됩니다. 이 에피소드는 ‘기억의 완전한 저장’이라는 기술적 가능성이 인간 관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기술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것이 ‘허용’되어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것입니다. 기술의 발전 속도에 비해 윤리와 사회적 합의가 따라가지 못할 때 생기는 파장을 가장 극단적인 방식으로 묘사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AI: ‘White Christmas’의 함정

‘White Christmas(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인간 의식을 복제한 인공지능이 얼마나 인간답고 동시에 비인간적으로 취급될 수 있는지를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의식을 디지털화하여 스마트홈을 제어하는 ‘복제 인간’을 만드는 기술자로 등장합니다. 복제된 AI는 실제 인간의 감정, 고통, 의식을 그대로 가지며, 자신이 갇힌 세계를 인식합니다. 하지만 이 AI는 단순한 가전제품처럼 취급되며, 스스로 존재의 의미를 묻고 고통 속에 방치됩니다. 드라마는 이 AI를 통해 인간이 만든 기술이 얼마나 쉽게 ‘노예화’될 수 있는지를 조명합니다. 또한, 진짜 인간과 다름없는 인격을 가진 존재를 인간은 얼마나 윤리적으로 대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도 함께 제기합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특히 시간 가속 기술을 통해 단 몇 분 만에 수년의 시간을 복제 인간에게 경험시키는 장면으로, 기술이 ‘고문’의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묘사하며 충격을 줍니다. 이는 AI가 발전함에 따라 앞으로 등장할 수 있는 ‘디지털 고문’, ‘디지털 인격권’ 같은 새로운 윤리 이슈의 시작을 암시합니다.

 

사회 통제와 평판 시스템: ‘Nosedive’의 디스토피아

시즌 3의 ‘Nosedive(폭락)’는 SNS 평점 시스템이 일상에 도입된 사회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모든 시민은 서로에게 평점을 매기며, 이 점수에 따라 주거, 취업, 병원 이용 등 사회적 기회가 달라집니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진심보다 이미지와 평판을 더 중시하게 되고, 인간관계는 점점 피상적이고 위선적으로 변합니다. 주인공은 높은 평점을 얻기 위해 매사에 웃고, 꾸미며, 계산된 인간관계를 유지하지만 결국 이 위선이 극단에 이르러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이 에피소드는 실제로 중국 등 일부 국가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회 신용 시스템’을 떠올리게 하며, 평판이 사람을 지배하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좋은 평가’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수렴될 때, 그 사회는 기술에 의한 전체주의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경고를 전하는 것입니다. Nosedive는 ‘평가’라는 인간의 심리와 그것을 수치화한 기술의 결합이 얼마나 쉽게 감시와 통제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블랙 미러’는 단순한 기술의 발전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윤리적, 사회적 문제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드라마입니다.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우리 사회의 기술 의존도와 인간성 사이의 균형에 대해 깊은 질문을 던지죠. 기술은 결국 인간을 위한 도구이며, 그 사용 방식은 우리 모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블랙 미러’는 이러한 경계를 넘어선 선택이 불러올 결과를 생생히 보여주며, 우리가 반드시 고민해야 할 ‘기술 윤리’의 중요성을 상기시켜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