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O의 화제작 ‘유포리아(Euphoria)’는 단순한 청춘 드라마를 넘어서, 등장인물들의 심리와 관계를 깊이 있게 탐색하는 드라마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각 캐릭터는 고유의 트라우마와 배경을 지니고 있으며, 그들이 맺는 관계는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만들어냅니다. 이번 글에서는 유포리아의 주요 등장인물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성격, 성장, 그리고 관계의 변화까지 심층적으로 분석해보고자 합니다.

루 베넷 (Rue Bennett) - 중독과 자아 사이에서
루는 유포리아의 핵심 인물이며, 이야기의 중심축입니다. 그녀는 고등학생이지만 이미 수년간 마약 중독과 싸워온 과거를 갖고 있으며, 심각한 불안과 우울 증세로 인해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상태로 첫 시즌을 시작합니다. 루의 중독은 단순한 나약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커다란 상실과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데서 기인합니다. 그녀는 극 중에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특히 마약에 취한 상태에서의 장면들은 매우 상징적이며, 루의 내면 혼란을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루는 줄스와의 관계를 통해 일시적으로 희망을 품게 되지만, 그 희망조차 그녀의 집착과 두려움으로 인해 왜곡되곤 합니다. 이러한 루의 감정선은 시청자에게 깊은 공감과 동시에 복잡한 감정을 안겨줍니다. 루는 자신이 감정을 제대로 다룰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스스로에게 정직하려 노력하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고통스럽습니다. 그녀의 나레이션은 시청자의 내면에도 직접 말을 거는 듯한 효과를 주며, 그녀의 고백을 듣는 듯한 몰입감을 제공합니다. 루는 유포리아가 단순한 청춘극이 아닌 ‘내면의 기록’임을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줄스 본 (Jules Vaughn) - 자아 정체성과 사랑의 경계
줄스는 루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온 인물입니다. 그녀는 시즌1 초반 전학생으로 등장하며, 트랜스젠더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지닌 동시에 활달하고 창의적인 감성을 지닌 캐릭터입니다. 줄스는 루에게 있어 마치 이상향처럼 비춰지지만, 그녀 역시 내면에 복잡한 감정과 불안을 안고 있습니다. 줄스는 루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루의 의존과 감정적 짐을 버거워합니다. 이는 시즌2에서 갈등으로 표면화되며,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무너져갑니다. 줄스는 스스로를 ‘자유로운 존재’로 인식하지만, 현실에서는 부모와의 관계,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불안, 사랑의 책임감 등 다양한 갈등 속에 놓여 있습니다. 특히 줄스의 성장 이야기는 트랜스젠더로서의 정체성뿐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관계 맺기에 대한 탐색으로 이어집니다. 그녀는 루와의 관계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을 더 넓게 이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으며, 줄스 또한 상처를 입고, 때로는 타인을 상처 입히는 존재로 그려집니다. 줄스는 유포리아에서 가장 복잡하면서도 매혹적인 인물 중 하나이며, 그녀를 통해 드라마는 사랑, 성, 자유, 그리고 책임이라는 주제를 섬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네이트 제이콥스 (Nate Jacobs) - 권력, 억압, 폭력의 그림자
네이트는 유포리아에서 가장 논란이 많은 캐릭터입니다. 그는 잘생기고 운동을 잘하는 전형적인 ‘미국 고교 인기남’처럼 보이지만, 그 내면은 깊은 폭력성과 혼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버지 칼 제이콥스와의 왜곡된 관계는 그의 성 정체성과 권력에 대한 집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네이트는 타인을 조종하고 지배하려는 성향이 강하며, 이는 그의 연인 매디(Maddy)와의 관계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는 매디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녀를 통제하고 위협하며 관계를 지배하려 합니다. 동시에 그는 줄스를 향한 감정에도 혼란을 느끼며,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부정과 혐오를 타인에게 투사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행동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많지만, 유포리아는 네이트의 행동 이면에 존재하는 억압과 두려움을 드러내려 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성적 비밀을 알고 있었고, 그것이 그의 심리와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따라서 네이트의 폭력성은 단순한 악의가 아닌, 억압된 자아의 폭발이라는 측면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네이트는 ‘유포리아’가 인간의 어두운 내면을 얼마나 깊이 있게 탐구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로, 그의 캐릭터를 통해 우리는 현대 사회가 만든 남성성의 틀과 그 안의 억압을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유포리아의 등장인물들은 각각 하나의 세계이자 서사입니다. 루, 줄스, 네이트는 모두 현실적인 고민과 감정 속에서 살아가며, 이들의 관계는 사랑과 상처, 집착과 이해 사이에서 끊임없이 변화합니다. 이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단순한 청춘의 낭만을 넘어서, 인간 내면의 복잡함을 마주하게 됩니다. 등장인물들의 깊이를 이해하며 유포리아를 다시 본다면, 그 감동은 훨씬 더 진하게 다가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