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NBC에서 첫 방송된 히어로즈(Heroes)는 평범한 사람들이 초능력을 갖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끈 SF 드라마입니다. 당시 TV 드라마로는 드물게 방대한 세계관과 수십 명의 캐릭터, 고퀄리티의 연출로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히어로즈는 방영 당시 수많은 화제를 낳았고, 지금까지도 '전설적인 미드'로 회자됩니다. 이번 글에서는 히어로즈의 제작 과정, 캐스팅 비화, 그리고 이후 기획되거나 제작된 스핀오프 프로젝트와 실패 요인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를 정리해보겠습니다.
NBC와 팀 크링의 야심작, 히어로즈의 기획 배경
히어로즈는 원래 NBC 방송국이 2000년대 중반, 급격한 시청률 하락에 대응하기 위해 마련한 전략적 기획 드라마였습니다. 당시 '로스트(Lost)', '프리즌 브레이크', '24' 같은 연속성 강한 서사 중심 드라마들이 큰 인기를 끌자, NBC도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작품이 필요했고,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바로 팀 크링(Tim Kring)입니다.
팀 크링은 본래 '크라임 스토리', '크로싱 조던' 같은 수사극 제작 경험이 있는 인물이었으나, 히어로즈를 통해 처음으로 SF와 초능력물에 도전하게 됩니다. 그의 아이디어는 단순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갑자기 능력을 갖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이 콘셉트는 마블 히어로물과 달리 일상 속 인물들의 현실적 고민과 도덕적 딜레마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NBC는 이 기획안에 빠르게 반응했고, 당시로서는 이례적인 제작비와 마케팅을 투자했습니다. 에피소드당 400만 달러가 투입되었으며, 파일럿은 뉴욕, 도쿄, 텍사스 등지에서 실제 로케이션 촬영이 이루어졌습니다. 제작 초기에는 각 에피소드마다 다른 감독이 연출에 참여했으며, ‘코믹북 스타일의 미장센’과 ‘영화 같은 영상미’는 당시 드라마로는 파격적인 시도였습니다.
또한 NBC는 히어로즈에 맞춰 온라인 전용 콘텐츠와 그래픽 노블, 히어로즈 웹에피소드(Heroes 360 Experience) 등 다채로운 디지털 콘텐츠를 병행하며 팬덤과의 연결을 꾀했습니다. 이는 훗날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가 확장하는 방식의 초기 모델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캐스팅 비화: 우연이 만든 레전드 조합
히어로즈의 성공에는 개성 넘치는 캐릭터와 배우들의 완벽한 조합이 큰 몫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초반 캐스팅은 순탄치 않았으며, 많은 부분이 우연과 타이밍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일로 벤티밀리아(Milo Ventimiglia)는 본래 시리즈의 중심이 될 계획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피터 페트렐리 역 오디션에서 감독에게 “조용하지만 강한 공감력을 가진 인물”이라는 인상을 남겼고, 그 결과 기존에 단역 수준이었던 캐릭터가 주인공급으로 부상했습니다.
헤이든 파네티어(Hayden Panettiere)는 클레어 베넷 역을 맡으며 10대 아이콘으로 떠올랐습니다. 그녀는 어린 나이에 이미 연기 경력을 쌓았으며, 강한 존재감과 함께 당시 미국 내 ‘영 히어로’ 이미지에 가장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녀가 극 중에서 보여주는 ‘자해 장면’은 리얼리티와 연기력 면에서 큰 충격을 주며 시즌 1 최고의 장면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가장 인기 있었던 캐릭터 중 하나인 히로 나카무라 역의 마시 오카(Masi Oka)는 원래 ILM(Industrial Light & Magic)에서 CG 기술자로 일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코미디적인 감성과 일본 문화를 동시에 전달할 수 있는 인물로 각광받았고, 실제로 일본어 대사와 영어 대사를 자유롭게 오가며 극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제작진은 히로 역을 처음부터 ‘일본계 배우에게 맡기자’는 계획이 있었고, 마시 오카의 등장으로 방향이 확정되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잭 콜먼(노아 베넷 역)은 원래 단역으로 등장할 예정이었지만, 시청자 반응이 뜨거워 정규 캐스트로 변경되었으며, 잭리 퀸토(사일러 역)는 본래 후반부 등장 예정이던 빌런이었지만, 그의 강렬한 카리스마로 인해 분량이 대폭 늘어나 주요 악역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스핀오프와 리부트, 그리고 미완의 유산
히어로즈의 인기가 절정에 달하던 시즌 1 이후, 제작진과 NBC는 수많은 확장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가장 먼저 준비된 것은 ‘히어로즈: 오리진스(Heroes: Origins)’라는 스핀오프 시리즈였습니다. 이 시리즈는 매 회마다 새로운 능력자 한 명을 조명하는 단편 형식으로 기획되었고, 당시 케빈 스미스, 엘리야 우드 등 유명 인사들이 에피소드 제작에 참여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2007년 전미 작가 파업(Writers Guild of America strike)으로 인해 해당 프로젝트는 무기한 연기되었고, 시즌 2와 시즌 3 역시 큰 영향을 받으며 스토리 완성도와 속도감 저하라는 비판을 받게 됩니다. 결국 Origins는 정식 제작 없이 폐기되었으며, 이는 히어로즈의 확장 가능성을 크게 위축시킨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후 2015년에는 NBC가 히어로즈의 리부트 버전인 ‘히어로즈 리본(Heroes Reborn)’을 선보입니다. 이 작품은 시즌 1에서 수년 후의 세계를 배경으로, 새로운 인물들과 함께 클레어의 딸 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기존 팬들이 반가워했던 히로, 노아 등의 캐릭터도 다시 등장하며 기대감을 높였지만, 아쉽게도 스토리 전개가 산만하고, 신인 캐릭터들의 매력이 부족하다는 비판 속에 한 시즌 만에 종영되었습니다.
이외에도 히어로즈는 코믹북, 웹 에피소드, 모바일 게임 등 다양한 부가 콘텐츠로 세계관을 확장했으며, 오늘날의 MCU, DC 유니버스 등 프랜차이즈형 콘텐츠 전개 방식의 선구자적 시도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히어로즈는 결국 여러 시도를 남기고 막을 내렸지만, 그 도전과 실험정신, 그리고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한 크로스미디어 전략은 이후 수많은 드라마 제작에 영향을 주었으며, 지금도 ‘부활’을 기다리는 팬들이 많습니다.
결론: 히어로즈는 실패한 작품이 아닌, 시대를 앞서간 콘텐츠
히어로즈는 시즌 후반 스토리 완성도 문제, 제작 일정 지연, 캐릭터 과잉 등의 아쉬움을 남겼지만, TV 드라마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점에서 분명 시대를 앞선 작품이었습니다. NBC의 공격적 제작 전략, 예상치 못한 캐스팅의 성공, 멀티플랫폼 콘텐츠 확장 등은 모두 오늘날 스트리밍 시대의 콘텐츠 기획에 직간접적 영향을 주었습니다. 히어로즈는 단순한 초능력 드라마가 아니라, TV의 가능성을 실험한 혁신의 아이콘이었습니다.